2008년 05월 13일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
예수가 그들을 보면 뭐라 말할까
최근 기독교에 대한 비판, 그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입장은 어떻게 취해야 할까...
생각해 보면 가끔 나도 기독인으로서 억울할때가 많다. 무조건 적인 비판 같고 정말 아닌데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고 말이다. 어떤 분들은 대응하지 않는것, 그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원하는 그런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고난"으로 착각하는 듯 하다.
그러나, 최근의 내 주변의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의 입장과 설교 말씀을 들어 보면 그냥 무조건 무대응 하는 건 옳지 않은 듯 싶다. 우선 그 비판의 내용을 우리 기독교인들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 교리에 대해 비판하거나 성경 말씀에 반기를 들고 나오며 비판하는 사람은 없다. 성경 말씀 자체에 대한 오류나 궤변으로 비판하지는 않는 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기독교를 비판하는가... 비판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다. 내가 볼땐 "우려" 의 목소리인것 같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기독교와 기독인들이 그 역할들을 잘 감당해 내고 있지 못한것이다. 세상은 기독교에게 다른 특별한 것을 요구 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저 기독교다운 기독교, 그저 기독인 다운 기독인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세속화 되어 버린 기독교와 기독인들, 나 역시도 거대한 맘몬신(물질의신)이 지배하는 이 세상속에서 하늘의 가치를 쫓아 사는 것이 너무나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고, 돈벌고, 내가 이기려 다른 사람을 누르고,, 하는 그런 것들의 욕구를 거스르는 일이 너무나 어렵다.
기독인들이여,, 세상이 우려하는 목소리를 무시하지 말자. 조금 실패 했다고 조금 넘어졌다고, 하늘의 가치를 포기고 세속적인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는 말자. 생명까지 내어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람들 앞에 또 겸손하게 엎드리며, 죽기 까지 짓밟히신 예수님의 그 길을 함께 걸어가자.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최근 기독교에 대한 비판, 그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입장은 어떻게 취해야 할까...
생각해 보면 가끔 나도 기독인으로서 억울할때가 많다. 무조건 적인 비판 같고 정말 아닌데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고 말이다. 어떤 분들은 대응하지 않는것, 그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원하는 그런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고난"으로 착각하는 듯 하다.
그러나, 최근의 내 주변의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의 입장과 설교 말씀을 들어 보면 그냥 무조건 무대응 하는 건 옳지 않은 듯 싶다. 우선 그 비판의 내용을 우리 기독교인들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 교리에 대해 비판하거나 성경 말씀에 반기를 들고 나오며 비판하는 사람은 없다. 성경 말씀 자체에 대한 오류나 궤변으로 비판하지는 않는 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기독교를 비판하는가... 비판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다. 내가 볼땐 "우려" 의 목소리인것 같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기독교와 기독인들이 그 역할들을 잘 감당해 내고 있지 못한것이다. 세상은 기독교에게 다른 특별한 것을 요구 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저 기독교다운 기독교, 그저 기독인 다운 기독인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세속화 되어 버린 기독교와 기독인들, 나 역시도 거대한 맘몬신(물질의신)이 지배하는 이 세상속에서 하늘의 가치를 쫓아 사는 것이 너무나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고, 돈벌고, 내가 이기려 다른 사람을 누르고,, 하는 그런 것들의 욕구를 거스르는 일이 너무나 어렵다.
기독인들이여,, 세상이 우려하는 목소리를 무시하지 말자. 조금 실패 했다고 조금 넘어졌다고, 하늘의 가치를 포기고 세속적인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는 말자. 생명까지 내어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람들 앞에 또 겸손하게 엎드리며, 죽기 까지 짓밟히신 예수님의 그 길을 함께 걸어가자.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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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5/13 14:17 | 꿍`s 나발림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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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뒤안길] 나와 다르면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칼빈에서 시작돼
김강한
내년이면 존 칼빈의 탄생 500주년이라고 한다. 이런 가운데 내년 2009년에 칼빈 탄생 500주년을 기념한 행사를 개최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중세 종교개혁자 칼빈은 1509년 7월 10일 프랑스 노용시에서 태어났다.
최근 모 기독교 신문은 ‘한국장로교회는 갈갈이 찢겨진 교단간의 신앙의 동질성 확인을 위해서라도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행사를 크게 벌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칼빈이 27세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함으로써 중세의 루터파나 개혁파의 종교개혁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고, 오늘날 장로교인들과 전세계 신교도(新敎徒)들이 칼빈에게 빚진 바가 크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한 칼빈의 신학과 신앙사상을 칼빈주의라고 부르고, 이 칼빈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사회와 문화가 개혁되고 변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한국교회는 칼빈주의의 장로교회가 67%를 차지하고 있는 장로교 중심의 기독교이다.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만을 신앙과 삶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믿고 따르는 교회가 장로교회’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십만명의 불란서의 위그노, 영국의 청교도, 화란의 개혁파, 스코틀랜드의 장로교인들이 목숨을 바쳐 우리에게 전해준 신앙이 칼빈신앙이라면서 하나님께서 이 (칼빈 500주년 기념) 행사를 통해 한국의 장로교회에 대통합의 은총을 허락하실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라고 전했다.
하지만 오늘날 칼빈을 뿌리로 하는 장로교가 칼빈에 대한 숨겨진 진실을 안다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칼빈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국이란 특별기구의 수장으로 재임하면서 참혹한 마녀사냥을 서슴지 않았다. 칼빈이 인구 13,000명에 불과한 도시 스위스에서 도덕경찰이라는 명목으로 종교국을 장악하고 사형시킨 공식적인 인원만 58명이며, 추방한 인원도 76명에 이른다고 한다.
칼빈의 종교적 후예인 청교도들에 의해 자행한 인간사냥도 신교 중에서 가장 잔인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역사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역사는 칼빈이 자행한 인간사냥에 대해 “칼빈 역시 사회통제를 위해 당시 대중적이던 마녀사냥에 집착했다”고 전하고 있다.
종교개혁이란 이름으로 인간사냥에 나선 칼빈은 이에 수반된 수많은 고문과 가혹한 만행들을 저질렀다. 칼빈은 심지어 자신의 교리인 예정설을 비난하고 위선자로 불렀다고 해서 사람들을 처형시켰으며 자신과 생각이 같지 않은 자유사상가이면 화형에 처해 죽였다.
역사학자인 네루는 ‘자신을 신의 손과 발로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에 위배 되는 일체의 것을 불허하여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는 자유사상가라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화형에 처했다’ 고 증언해주고 있다. 역사가들은 칼빈이 사람들을 처형시킨 유형들을 ‘칼빈의 예정설, 성서 권위의 문제, 삼위일체설, 유아세례, 성만찬 등의 해석에서 칼빈과 의견을 달리했기 때문이었다’며 공통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칼빈이 자행한 수많은 살상은 그리스도란 이름으로 행해졌으며 이것이 그리스도의 신앙인 줄 알고 자행했다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런 일이다. 칼빈주의에서 인간의 생명이나 인권은 거룩함을 가장하기 위한 위장이라는 것을 칼빈의 행위를 통해서 증명된다.
오늘날 칼빈 후예의 중심에 서 있는 장로교가 칼빈의 그 만행들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기독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로교는 칼빈 500주년이 아니라, 오히려 참회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칼빈으로 인해 오늘날 기독교가 갈갈이 찢어지고 있으며 나와 다르면 무조건 비판하는 풍토가 장로교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숭상하는 칼빈의 살인사상과 교리에 맞지 않는 교회나 교단을 중세 대 인간사냥을 하듯이 마구잡이로 비판하고 정죄하는 영적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